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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nday, June 14, 2020

미싱과 마징가 제트 - 국민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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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br>최태호 교수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최태호 교수

[국민투데이 전문가 칼럼=최태호 중부대학교 한국어학과 교수] 오늘 제목으로 사용한 단어들은 지금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금방 알고 있다. 하나는 재봉틀을 말하고, 또 하나는 유명한 만화영화 제목이다. 사실 어린 시절에 많이 사용했지만 그 의미도 잘 모르고 써 왔었다. 유명한 ‘노찾사’의 노래에서도 “미싱은 돌고 도네 돌아가네.”라는 노랫말이 있을 정도로 미싱은 우리네 삶에서 아주 가까이 있었던 물건이고 늘 사용하던 단어였다. 특히 우리나라의 가발이 세계적으로 많이 팔리고, 우리나라의 경공업 섬유제품이 세계로 수출되던 시절에는 공순이라는 별로 좋지 않은 호칭을 듣던 우리네 선배들이 가발공장에서 미싱을 돌리면서 동생들을 가르쳤다. 그런 날들이 있었기에 대한민국의 지금이 있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의 삶에서 미싱은 생활을 보장하는 생명선이었다.

미싱은 영어가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 오면서 이상하게 변한 단어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서양에서는 ‘sewing machine'이었다. 즉 ‘꿰매는 기계’를 말하는 것이고, 우리말로 재봉틀이라고 했다. 재봉하는 기계가 어쩌다가 ‘재봉’이라는 단어는 빠지고 ‘틀’이라는 단어만 남아서 그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앞에 수식하는 말은 다 빼 버리고 ‘틀’이 모든 것을 대신하게 되었으니 영어가 객지에 와서 정말 고생 많이 하는 격이다. ‘machine'의 일본식 발음이 ‘미싱’이었다. 앞에 있는 중요한 수식어를 버리고 ‘기계’만 남아서 이상한 단어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영어가 일본을 거쳐 오면서 우리말이 된 것은 종종 있다. ‘램프’도 우리나라에 와서 ‘남포’로 바뀌었다. 실제로 필자는 호롱불에서 남포와 전기를 모두 겪은 세대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시골의 외딴집에서 호롱불을 켜고 살았다. 그러다가 남포가 처음 들어 왔고, 그 밝음에 너무 좋아서 심지를 돋우고 줄이고 하는 재미있는 놀이를 즐겼고, 호야(남포의 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는 유리)의 그을음을 닦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마을로 이사를 했고, 한참 후 전기가 들어와 5촉짜리 전깃불을 켰는데, 이건 대낮이 따로 없었다. 그 밝던 남포불이 그렇게 초라해 질 수가 있었는지 놀라울 따름이었다. 그 당시도 남포가 영어의 ‘lamp'에서 유래한 것인 줄을 모르고 단지 어른들이 남포라고 하니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대로 불러왔다.

또 하나 만화영화로 어린이들에게 무지하게 인기가 많았던 작품이 ‘마징가 제트’였다. 아마도 50대 독자들이면 “마징가, 쇠돌이, 마징가~~~젵”하는 주제가가 귀에 들리고 있을 것이다. 필자가 만화영화를 별로 즐기지 않아서 처음 중학교에 발령받아서 아이들과 소통하기 어려울 때 교직에서 40년 이상 보내신 선친께서 “가서 만화영화나 봐!”라고 하셨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만화영화를 보고 나서야 아이들과 제대로 소통할 수 있었으니 선친의 원 포인트 레슨(요즘 말로 하면 눈높이 교육이었다.)이 정말 소중했음을 기억한다. 그 때는 개구쟁이 스머프를 매일 보았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마징가 제트>라는 만화영화의 뜻을 제대로 알고 있는 독자가 얼마나 될까 궁금하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영어로 ‘Machiner Z'를 일컫는 말이었다. 역시 일본을 통해서 들어오다 보니 완전히 일본식 발음으로 이상하게 변질되어 우리나라 어린이들에게 가감 없이 전해진 것이다. 우리말로 하면 ’기계인간 Z'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래도 로봇에게는 영어식 표현이 더 어울렸던 모양이다. 그렇다면 ‘머쉬너 지’라고 했으면 안 되는 것이었는지 묻고 싶다. 일본인들이 부르는 말을 그대로 우리말에 적용하다 보니 ‘마징가 제트’가 되었는데, 아무도 이에 대해 따지는 사람이 없었다. 방송의 힘은 위대하다. 그래서 언론을 제 삼의 권력이라고 부른다. 요즘은 “한 시간 빠른 뉴스”라는 말이 없어졌다. 당시에는 많이 듣던 것인데, 학자들이 잘못된 표현이라고 주장하면서 빠지게 된 것이다. 그래서 대중적인 인기가 있는 작품의 제목을 선정할 때는 신중해야 한다. 국적 없는 단어들이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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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une 15, 2020 at 04:21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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