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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nday, November 2, 2020

LG, 두산의 잠실구장 동거는 현대 탓? -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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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희 기자의 맛있는 야구]
2014년 개막전에서 맞붙었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한겨레DB
2014년 개막전에서 맞붙었던 LG 트윈스와 두산 베어스. 한겨레DB
한 지붕 두 가족. 2020 케이비오(KBO)리그 준플레이오프(4일 시작)에서 맞붙는 두산 베어스, 엘지(LG) 트윈스를 일컫는 말이다. 두 팀은 국내 프로 구단들 중 유일하게 한 야구장을 나눠 쓴다. 준플레이오프 동안 두 팀은 서로 1루 더그아웃과 3루 더그아웃만 오가면 된다. 승자가 고척 스카이돔으로 향한다. 역대 4차례 가을야구 맞대결에선 두산과 엘지가 2승2패를 나눠가졌다. 두 팀이 잠실야구장에서 동거를 하게 된 데는 1982년 프로야구 출범 시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프로야구는 1905년 질레트가 국내에 야구를 선보인 뒤 77년 만에 태동했지만 출범 초창기에는 야구단을 창설할 기업을 찾는 것이 어려웠다. 맨 처음 참여 의사를 나타낸 기업은 엠비시(MBC), 삼성, 롯데 등 3곳밖에 되지 않았다. 엠비시는 독자적으로 프로야구 창단 계획을 갖고 있던 터라 1순위로 창설 의사를 밝혔고 알짜배기인 서울 지역을 손쉽게 품었다. 롯데는 부산, 삼성은 대구와 짝짓기를 성공했는데 인천과 대전이 문제였다. 인천 지역을 맡을 기업으로 맨 처음 접촉한 곳은 현대였다. 하지만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은 88올림픽 유치에 분주해서 프로야구 출범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때 즈음 두산이 야구단 창단에 관심을 보였다. 고 박용곤 회장이 미국 워싱턴대에서 유학했던 경험상 프로야구가 기업 이미지에 미치는 영향을 잘 알고 있었다. 두산(전 OB)의 연고는 자연스럽게 대전 지역으로 정해졌다. “서울은 엠비시, 인천은 현대로 확정됐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동대문야구장 모습. 한겨레DB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당시 동대문야구장 모습. 한겨레DB
하지만 현대가 인천 야구팀 창단에 확실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자 상황이 180도 달라졌다. 서울에 미련을 뒀던 두산이 대전 대신 현대가 포기한 인천을 연고지로 요구하고 나섰다. 그럴 경우 다시 대전에 새로운 기업을 찾아야 했던 탓에 프로야구 출범 추진 팀은 서울의 선수자원에서 3분의 1(MBC 2, 두산 1의 비율로 신인드래프트)을 나눠주고 3년 뒤 연고지를 서울로 옮겨주겠다고 약속했다. 두산의 3년 뒤 연고지 이동에는 이미 서울을 확보한 엠비시의 동의도 있었다. 그리고 1985년, 약속대로 두산은 대전을 떠나 서울로 입성했다. 서울 두산(당시 OB)의 첫 홈구장은 동대문야구장이었다. 그러나 1986년 대한야구협회가 각종 아마추어 대회의 원활한 진행을 위해 동대문야구장을 1년 내내 사용하겠다고 선언하며 두산은 떠돌이 신세로 전락할 위기에 몰렸다. 야구위(KBO)의 중재 아래 서울시, 엠비시와 함께 잠실구장 공동 사용문제를 협의했으나 엠비시는 홈경기의 60%만 쓸 것을 두산에 제안했고 서울시는 잔디보호 차원에서 잠실구장에서 연간 108게임만 치를 수 있다는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결국 엠비시와 두산이 잠실야구장을 공동 사용하되 1주일에 6경기를 치를 때는 잔디 보호를 위해 경기 시작 10분 전까지는 연습할 수 없다는 서울시의 제안을 수용, ‘한 지붕 두 가족’이 탄생했다. 물론 두 구단은 1주일 6경기를 치를 때마다 잠실야구장 외 홈팀, 원정팀 연습 구장을 찾아 분주하게 움직여야 했다. (대한야구협회 발행 <한국야구사> 1237쪽 참고) 1989년 말 엠비시 청룡 야구단이 럭키금성으로 매각되며 1990년부터 본격적으로 엘지(LG)와 두산(OB)이 맞수관계가 됐다. 엠비시 청룡 매각에는 진로유통, 한일그룹, 현대, 대우 등 그룹들이 인수 고민을 했는데 1983년부터 프로야구 가입을 강력히 원했던 럭키 금성이 새로운 서울의 주인이 됐다. 럭키 금성 그룹 최초로 엘지라는 이름을 사용한 엘지 트윈스는 1990년 프로 출범 9년 만에 최초로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는 기쁨을 맛보기도 했다. 두산의 경우 프로 원년에 우승했으나 당시 연고지가 비록 임시였지만 대전이었기 때문에 서울 팀 최초 우승 기록은 엘지가 갖게 됐다. 모기업이 한 번 바뀌기는 했으나 1982년 프로야구 출범 때부터 서울 지역을 연고로 했던 엘지  트윈스나 창단 때부터 ‘서울’ 연고지를 확약 받고 3년간 타지생활을 했지만 모기업은 한 번도 바뀌지 않은 두산이나 ‘잠실야구장은 우리 꺼’라고 주장할 명분은 충분하다. 최근에는 두산 성적이 엘지 성적보다 나아 두산 팬들의 어깨가 더 으쓱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몇 년 간 상대 전적도 두산이 엘지를 앞선다. 모그룹의 유동성 위기로 매각 위기에 놓인 두산 베어스와 모그룹의 열정적 야구 사랑에도 94년 우승이 마지막인 엘지 트윈스. 잠실야구장 신축이 예정돼 있는 상황에서 엘지, 두산 모두 접근성이 좋고 1000만 팬의 잠재력이 있는 서울 연고지를 버릴 생각은 없다. 하지만 잠실구장을 둘로 쪼개 사용하다보니 공간이 너무 협소하다. 영구결번 번호조차 야구장 벽면에 걸 수 없다. 과연 두 구단의 동거는 언제까지 계속 이어질까. 김양희 기자 whizzer4@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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